상담실에서 자주 듣는 말입니다.
"파닉스는 두 번이나 돌렸어요. 그런데 아직도 책을 혼자 못 읽어요."
이때 파닉스를 세 번째로 돌리는 건 대개 답이 아닙니다. 파닉스가 부족한 게 아니라, 파닉스 앞뒤에 있어야 할 것이 비어 있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파닉스는 읽기의 전부가 아니라 첫 칸입니다
영어 읽기에는 성격이 다른 두 구간이 있습니다.
| 구간 | 시기 | 하는 일 |
|---|---|---|
| 읽는 법을 배우는 시간 | Pre-K ~ 초3 | 소리·해독·유창성 |
| 읽어서 배우는 시간 | 초4 ~ | 지식과 사고가 자라는 시간 |
파닉스는 이 중 앞 구간의 한 조각입니다. 파닉스를 끝냈다는 건 첫 칸을 지났다는 뜻이지, 읽기를 마쳤다는 뜻이 아닙니다.
빠진 것 ① 음소 인식 — 파닉스보다 먼저 오는 것
음소 인식은 글자 없이 소리만 다루는 능력입니다. cat을 듣고 /k/ /æ/ /t/ 세 소리로 나눌 수 있는지, 그 소리들을 다시 합쳐 말할 수 있는지죠.
이게 비어 있으면 파닉스는 암기가 됩니다. 배운 단어는 읽는데 처음 보는 단어에서 멈추는 아이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집에서 확인법 — 아이가 본 적 없을 만한 짧은 단어를 하나 써서 읽어보게 하세요. 배운 적 없는 단어를 규칙으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이 칸이 비어 있습니다.
빠진 것 ② 유창성 — 읽기는 되는데 남지 않는 이유
소리 내어 읽을 때 한 단어씩 뚝뚝 끊어 읽는 아이가 있습니다. 읽기는 읽는 겁니다. 그런데 해독에 온 힘을 다 쓰고 나면 내용을 붙잡을 여력이 남지 않습니다.
"읽긴 읽는데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는 말의 상당수가 여기서 나옵니다.
집에서 확인법 — 한 쪽을 소리 내어 읽게 한 뒤, 방금 읽은 내용을 한국어로 말해보게 하세요. 읽기는 매끄러운데 설명을 못 한다면 다음 항목입니다.
빠진 것 ③ 어휘 — 해독은 되는데 뜻을 모를 때
글자는 정확히 읽는데 그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경우입니다. 소리는 났지만 의미는 지나간 거죠. 초등 고학년으로 갈수록 이 벽이 두꺼워집니다.
오늘 집에서 확인해볼 네 가지
- 소리와 글자를 정확히 연결하나요
- 소리 내어 읽을 때 막힘없이 읽나요
- 모르는 단어를 문맥으로 넘어가나요
- 읽을 책을 스스로 고르나요
네 가지 중 걸리는 곳이 있다면, 그 자리가 지금 채워야 할 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요
파닉스를 다시 돌리기 전에 어느 칸이 비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비어 있는 칸이 음소 인식이라면 소리 훈련으로, 유창성이라면 낭독으로, 어휘라면 읽는 책의 난이도를 조정하는 것으로 각각 처방이 달라집니다.
같은 "못 읽어요"라도 원인이 다르면 해야 할 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